다섯 번째 이야기 | 고등학생이 된 두 딸, 사이판에서의 마지막 성장기

다섯 번째 이야기 | 고등학생이 된 두 딸, 사이판에서의 마지막 성장기


고등학생이 된 두 딸, 사이판은 어떤 곳이었을까

사이판에서 두 딸을 키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씩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던 시절까지 왔습니다.
큰딸은 4살, 작은딸은 2살에 사이판에 왔습니다.
어린아이였던 두 딸은 그곳에서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며 자랐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빠른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고,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판에서 자란 아이들의 눈에 그 섬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인 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지금에서야 그때의 시간을 조금 천천히 돌아봅니다.

큰딸의 첫 고등학교, Mariana High School

큰딸은 8학년을 졸업한 후 Mariana High School에 진학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K-5부터 8학년까지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계속 사립학교를 다니기에는 재정적인 부담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후 공립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큰딸이 처음 진학한 곳이 Mariana High School이었습니다.
 Mariana High School에서 1년 조금 넘게 생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업 때문에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중학교 때부터 힘들어했던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학교생활 자체를 많이 힘들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로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음날이면 다시 학교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습니다.

두 딸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다

그 사이 작은딸도 8학년을 졸업했습니다.
작은딸 역시 언니와 같은 Mariana High School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은딸이 처음부터 원했던 학교는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작은딸은 음악 활동, 특히 밴드 활동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Southern High School에 진학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Southern High School은 당시 밴드 활동으로 좋은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리고 있던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면 하교 시간과 장소도 달라집니다.
초등학교 때에도 픽업과 샌딩 문제 때문에 학교를 옮겨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두 아이를 서로 다른 학교에서 각각 데려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도록 이해를 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가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생활이라는 현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은딸은 언니와 같은 Mariana High School에 진학했습니다.

결국 큰딸은 전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9학년에 들어서면서 큰딸의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결국 큰딸이 저에게 전학을 보내 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견뎌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학교를 옮기는 것이 정말 해결책일까.
하지만 아이가 계속 힘들어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큰딸을 Southern High School로 전학시키기로 했습니다.
마침 Southern High School은 집과 같은 지역에 있어 통학 문제도 조금은 나았습니다.
그렇게 큰딸은 원래 작은딸이 가고 싶어 했던 Southern High School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처음부터 Southern High School을 원했던 작은딸은 그대로 Mariana High School에 남았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때로 엄마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언니와 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아이는 서로 다른 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두 학교를 오가던 시간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생활은 참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저는 두 곳을 오가야 했습니다.
업무시간 중간에 시간을 내어 빠르게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데려다 주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이 급했습니다.
특히 그때는 저도 직장을 옮긴 직후였습니다.
작은 여행사에서 일을 시작했던 시기라 회사에서도 더 눈치가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업무를 하다가 시간을 맞춰 나가야 했고, 아이들을 데려온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아이들을 부탁할 수도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가 해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늘 서두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을 하고, 시간을 맞춰 아이들을 데려오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Mariana High School과 Southern High School

Mariana High School과 Saipan Southern High School 학교 로고, 돌핀과 만타레이를 각각 상징
사이판 Mariana High School (상징 : 돌핀) 과 Southern High School (상징 : 만타레이) 로고
이미지 출처 : Mariana High School 및 Southern High School 공식 홈페이지

제가 기억하는 당시 Mariana High School은 올레아이에 위치한 전통 있는 공립 고등학교였습니다.
사이판에서 규모가 큰 고등학교 중 하나였고, 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반면 Southern High School은 당시에는 비교적 새로운 학교였습니다.
코브러빌에 위치해 있었고 밴드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리고 있던 학교로 기억합니다.

두 학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학교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저 역시 두 학교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이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립학교는 학생 수가 비교적 적었고 외국인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반면 공립학교는 학생 수가 많았고 로컬 학생들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학교가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마다 맞는 환경이 다르고, 학교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이판에서도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은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학원이나 과외, 방과 후 수업 등을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사이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과외나 방과 후 활동을 알아보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을 해야 했고, 경제적인 여유도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거나 여러 가지 방과 후 수업에 참여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충분히 해주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잘 해주었습니다.
특별한 사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학업을 잘 유지했고, 결국 두 딸 모두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사이판의 아름다운 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사는 삶을 한번쯤 꿈꿀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사이판의 아름다운 모습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살아보면 여행과 생활은 전혀 다릅니다.
여행자는 며칠 동안 불편함을 경험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자는 그곳에서 매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직접 해결해야 하고,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알아봐야 하고, 직장에서 일이 생겨도 결국 내 몫입니다.
무엇보다 내 나라의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말을 다시 이해해야 하고, 때로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설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가까이에 없는 외국 생활은 생각보다 외롭고 힘든 순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일을 해야 했고, 우리 가족의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버텼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이판에서 보낸 19년은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낸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잘 견디고 성장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
그 시절을 함께 견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하루하루가 아이들의 성장과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이판에서의 가족생활도 조금씩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큰딸이 먼저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작은딸은 미국으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사이판을 떠났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사이판에 처음 왔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이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섬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처음 사이판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이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날이 왔습니다.
두 딸이 차례로 사이판을 떠나고 나니 집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저는 몇 년 동안 사이판에 더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 저 역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9년이 지나고 돌아온 사이판

1996년에 시작한 사이판 생활은 그렇게 약 19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말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돌아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고, 학교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외롭기도 했고, 막막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생각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사이판이 좋습니다.

지금도 내가 사이판을 좋아하는 이유

사이판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을 잊게 하는 고요함.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가끔 그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스콜.
비가 쏟아진 뒤 다시 햇빛이 비치는 순간도 좋아했습니다.
푸른 바다도 좋았지만, 저는 어쩌면 그곳의 느린 시간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가끔 사이판의 시간이 생각납니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던 어느 오후.
창밖으로 보이던 하늘.
아이들이 학교 정문을 나오기를 기다리던 시간.
그때는 평범했던 순간들이 이제는 그리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이판과 연결되어 살고 있습니다.

사이판을 떠난 뒤 제 삶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지금도 사이판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사이판 호텔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사이판을 이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아이들의 엄마로 사이판을 살았고, 지금은 사이판과 관련된 일을 하며 그곳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이판은 제게 과거의 장소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외국 생활을 꿈꾸는 분들에게

혹시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을 꿈꾸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외국 생활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매일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생활에는 돈이 필요하고, 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고, 학교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도 생깁니다.
무엇보다 내 나라의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매일 사람들과 대화하고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생활을 통해 얻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사이판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딸이 어린 시절부터 그들과 어울려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힘든 만큼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엄마로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

지금 60대가 되어 그 시절을 다시 돌아봅니다.
그때의 저는 정말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학교 생활은 괜찮은지, 직장에는 문제가 없는지, 오늘은 아이들을 제시간에 데려올 수 있는지.
늘 그런 걱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제가 잘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도 참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딸에게 고맙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주지 못했는데도 자신의 자리에서 잘 자라주었습니다.
지금은 그 시간들이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이판에서의 긴 시간이 끝나고

두 딸이 떠나고 저도 결국 사이판을 떠났습니다.
1996년 어린 두 딸과 함께 시작했던 생활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두 딸의 어린 시절은 사이판이라는 섬과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사이판과 관련된 일을 하며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사이판을 떠났지만 사이판은 아직 제 삶에서 떠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사이판을 떠올리면

사이판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바다만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오가던 길이 생각나고, 직장에 다니며 늘 시간을 계산하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힘들었던 날도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웃었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던 두 딸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사이판이 좋습니다.
그곳에서의 19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제 두 딸이 사이판을 떠난 후의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떠난 뒤 저는 몇 년 동안 사이판에서 혼자 생활했습니다.
두 딸이 없는 사이판은 예전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아이들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사이판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19년 동안 살았던 사이판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아이들이 떠난 후, 혼자 남은 사이판에서의 시간과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기록해 보겠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작은 섬, 사이판.

그 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1996년부터 사이판에서 생활하며 직접 경험하고 기억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당시의 학교와 생활환경, 제도 등은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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