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야기 | 아이들은 낯선 학교에서 어떻게 적응했을까
세번째 이야기 | 아이들은 낯선 학교에서 어떻게 적응했을까
사이판에서 두 딸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다
1996년, 남편과 두 딸을 데리고 사이판으로 이주한 뒤 우리 가족의 생활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작은 마켓을 운영했고, 나는 가게와 집을 오가면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또 하나의 큰 과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큰딸은 만 5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인 유치원을 지나 정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해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만 5세, 큰딸의 첫 학교생활
당시 사이판은 지금보다 훨씬 활기가 넘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섬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학교에도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아는 지인의 소개로 Seventh Day School을 알게 되었고, K-5 과정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된 지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아이들이 친해져 서로 어울리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큰딸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알파벳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처음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생활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어린 딸을 학교에 보내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이미 친해진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었던 아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딸의 학교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어도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낯선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까지 낯설었으니까요.
담임 선생님도 그런 아이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방과 후에 따로 영어 수업을 받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아이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쉽게 아이의 말문은 트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수업조차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한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대만계 영어 선생님이셨던 Ms. 장 선생님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만나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큰딸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한 교육 방법 하나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교육 방식과 아이의 성향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없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씩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선생님과의 대화가 늘어나면서 아이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인 나도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말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아이마다 배우는 속도와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학교라서 더 따뜻했던 Seventy Day School
Seventh Day School은 규모가 큰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학교였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학부모와 학생들이 서로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학교 전체가 하나의 작은 가족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는 큰딸이 학교에 적응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영어를 배우는 것 만큼이나 자신이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학교가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큰 딸은 그때의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 시절 아이를 도와주셨던 선생님들을 잊지 못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던 부모에게는 작은 도움 하나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해, 작은딸도 같은 학교에 입학하다
큰딸이 학교생활에 적응한 모습을 보면서 다음 해에는 작은딸도 같은 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딸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이판 학교들은 가을 학기로 학년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작은딸의 생일은 11월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K-5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를 직접 만나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연필을 잡는 모습도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작은딸도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교장 선생님이 아이를 직접 만나 판단해 주신 것이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딸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두 딸이 함께 학교에 다니던 시간
큰딸은 2학년 중간, 작은딸은 1학년 중간까지 그 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이판에 왔을 때만 해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영어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적응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울기도 했고, 힘들어하기도 했고, 부모인 나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조금씩 방법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 자체가 두 딸에게는 중요한 성장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학교가 아니라 비자 문제였습니다.
사이판으로 이주할 당시 우리 가족은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 받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이판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해야 했던 나는 남편과 달리 Employee 비자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비자를 변경하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나는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약 3개월 정도 머물러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사이판에 남겨둘 수는 없었습니다.
부득이하게 두 딸도 함께 한국으로 가서 약 3개월 동안 한국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훗날 큰 후회로 남을지는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이판에서 한국으로, 다시 새로운 학교로
아이들에게는 또 한 번의 환경 변화였습니다.
사이판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국 학교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비자 문제를 해결한 뒤 다시 사이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간 뒤에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정들었던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을 뒤로 하고 다른 학교로 옮겨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두 딸은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사이판에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했고,
영어를 배우며 친구를 사귀었고,
다시 한국 학교로 옮겼다가,
얼마 후에는 사이판으로 돌아와 또 다른 학교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힘들고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 경험들이 두 딸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걱정합니다.
특히 낯선 환경에서는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계속 걱정하게 됩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하지 못해 힘들어했지만 결국 말을 하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학교에서도 다시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간과 주변의 따뜻한 도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선생님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시절의 선생님들을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에게 선생님의 작은 관심은 큰 힘이 됩니다.
특히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큰딸에게 기다려주고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가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두 딸의 사이판 학교생활은 단순히 영어를 배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학교를 만나게 됩니다
사이판으로 돌아온 뒤 두 딸은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 했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번에는 또 어떻게 적응할까'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두 딸의 사이판 학교생활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두 딸이 새로운 학교로 옮기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이 또 한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를 기록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는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경험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국 나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만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모 역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1996년 낯선 사이판에 도착했던 우리 가족.
그리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조금씩 성장해 갔던 두 딸.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어 기록해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